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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목표가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사실 가족과 정의는 어울리지 않는다. 맑스의 주장대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구성원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는 가족같은 사회이다.  


사실 정의의 문제는 분배의 문제이다. 우리나라도 성장보다는 분배에 관심을 가질 때이다.


예를 들어 최고의 피아노가 한대 있다. 누구에게 주어야할까?

1. 경매에 붙이자 - 시장, 자본주의

2. 다수결로 하자 - 민주주의

3. 세상 모든 사람을 가장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대중연주자 - 공리주의(벤담, 밀)

4. 돌아가시기전 마지막으로 딸의 연주를 듣고 싶은 엄마 - 맑스 사회주의

5. 선천적 장애를 딛고 연주에 몰입하고 있는 소년 - 존 롤즈(최소수혜자에게 최대 혜택을 돌아가게 하자)

6. 세상에서 가장 피아노를 잘치는 피아니스트 - 샌덜, 아리스토텔레스 (목적론적 존재론)


완전경쟁시장은 시장 참여자에게 효율성을 보장한다.  그러나

예를 들어 통큰치킨을 싸게 먹고 싶다. 치킨 소상인을 보호하고 싶다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합리성을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대자적 합리성: 치킨 소상인을 보호하고 싶다.

즉자적 합리성: 1차적 합리성 , 싸게 치킨먹고 싶다. 

-> 이런 가치의 충돌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대자적 합리성을 구현해야한다. 정부없는 시장은 존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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